50주년 행사 양국정상 교차참석…발전적 한일관계 단초

▲ 김태현 중앙대 교수
[전국뉴스] 6월 22일로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다. 마땅히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분위기는 그렇지 못하다. 그것을 기념하는 행사의 수도 줄었고 공식행사의 규모도 10년 전 40주년 행사에 미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우려하듯이 작금의 한일관계는 지난 50년간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난 50년간 한일관계에는 굴곡이 많았다. 역사의 굴곡과 애증이 교차된 국민감정을 반영하여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날 때 마다 큰 요동을 치곤했다. 그래도 길게 볼 때 대체로 낙관적 기류가 지배적이었다. 냉전과정에서 미국을 고리로 한 안보협력이 자리를 잡았다. 우리경제가 성장하고 세계경제가 통합되면서 양국의 경제는 상호의존적이 되었다. 정보통신기술의 혁명적 진보에 힘입어 ‘한류’로 대표되는 사회문화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의 흐름은 그 같은 낙관을 무색케 하고 있다. 종군위안부, 역사문제 등 현안이 해결되지 않고 표류하는 가운데, 상호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것은 양국 사이의 교류에도 악영향을 미쳐, 상호방문자와 교역량의 감소로까지 이어졌다. 감정의 문제는 이제 실질적 상호의존의 축소로 까지 연결되고 있다.

문제는 지금의 상황이 돌출적 사건에 대한 감정적 대응에서 야기되던 과거의 패턴과 다르다는 데 있다. 그 근저에는 중국의 부상으로 촉발된 지역차원, 나아가 세계적 차원의 구조변화가 있다. 따라서 돌출사건이 무마되고 감정이 가라앉으면 사그라지곤 하던 과거의 패턴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즉 양자적 현안을 더 이상 양자적으로 풀 수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변수다. 중국이 경제력에서 추월하고 동중국해 영토분쟁 등 외교적 현안에서 강압적 행태를 보임에 따라 일본은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성장하는 중국시장은 매력적이지만, 그래도 내수부분이 큰 일본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기회보다 외교안보적 위협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정상국가’로의 행보를 가속화하여 자국의 외교안보적 입지를 강화하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자 한다.

반면 한국의 입장은 그와 반대다. 수출의존도가 큰 한국에게 중국은 이미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수출시장이다. 군사안보적 위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외교안보적으로 무엇보다 큰 요소인 북한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특별한 현안이 없는 한 굳이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여기에 미국변수를 더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일본은 중국을 견제함에 있어 미국을 활용하고자 한다. 따라서 미중관계의 경쟁적 측면에 초점을 둔다. 한국은 북한문제에 있어 미국과 중국의 공조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미중관계의 협력적 측면에 초점을 둔다.

종군위안부 문제, 과거사 문제, 영토문제는 한일양국이 긴 세월을 두고 씨름해야 할 족쇄지만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위에 전략적 차원의 입장차이가 덧 씌워져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상이다. 따라서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려면 보다 크고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는 중국문제다. 중국의 부상은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제기한다. 그에 대한 양국입장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이지 종류의 차이는 아니며, 실질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따라서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아니다. 바로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한중일 3국회의를 제도화했다. 2012년 이래 3년째 열리지 않고 있는 3국 정상회담을 다시 열 때가 됐다.

둘째, 미국의 문제는 오히려 쉽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이다. 중국은 냉전용 동맹이었던 한미동맹의 지속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미양국은 한미동맹을 탈냉전시대 포괄동맹으로 새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북한의 도전은 여전히 중요한 사안이지만 그것은 이제 한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도전이기 전에 지역안보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오늘날 동아시아 안보질서를 조망하면서 냉전적 질서의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 같은 견해는 두 가지 점에서 잘못이다. 첫째, 군사적 대립의 중요성이 낮아지고 경제적 상호의존이 크게 증대한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둘째, 현실과 동떨어진 담론체계를 확대재생산함으로써 국제안보문제에 대한 인식과 정책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역 내부의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의 상호의존에 주목하여 ‘동아시아 평화구상’(동평구)을 제시하고 추진해왔다. 정상화 50주년을 맞은 한일관계는 이제 양자적 차원을 떠나 지역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의 현안을 동평구 차원에서 접근하는 파격적 방법이 유효할 수도 있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4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22일 양국에서 열리는 50주년 행사에 양국정상의 교차참석에 합의한 것은 양국관계 개선을 위한 낭보(朗報)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이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한일관계를 위한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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