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국대병원 신경과 한설희 교수.

누구나 나이를 먹습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 ‘나이 들어감’ 그 자체가 커다란 무게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지요. 기억하는 능력의 저하, 즉 기억력이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나이 들어감’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혹의 나이가 되면 지난 날의 어떤 일을 금방 기억해 내지 못하기도 하고 사람이나 물건 이름을 즉시 떠올리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도 같은 일이 반복되면 혹시 치매가 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한번쯤은 걱정스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서양에서는 ‘senior moment’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노인 건망증’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건망증’이 어떤 사람은 계속 나빠져 치매로 진행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더 나이가 들어도 그 상태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치매로 진행되는 ‘치매 고위험군’과 단순 건망증 단계에서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기억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성공적 노화’를 쉽고 확실하게 구분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현재 전 세계에 약 5,000만명의 사람이 치매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 수는 2030년에는 7,500만명, 2050년에는 1억 3,200만명까지 증가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환자 자신은 가족이나 간병인에게 의지하여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더라도 자신의 불행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그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환자의 가족들은 연민을 떠나서 우울증과 불안감에 시달려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가까운 장래에 이 절망적인 질환을 완치할 수 있는 약물의 개발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병이 우리를 지배할 때까지 무기력하게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지난 이십여 년간의 인구의학적 연구에 의하면 치매를 유발하는 병리적 변화는 이미 40대 초반에 시작되어 20년~30년간의 긴 잠복기를 가지고 있다가 휴식과 풍요로움을 즐겨야 할 인생의 황혼기에 비로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치매의 발생이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20년~30년이 된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치매 발병 위험인자를 잘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치매 발생의 1/3은 예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치매의 발생시기를 1년 늦추면 2030년까지 전세계 치매 환자의 발생 숫자를 900만명 감소시킬 수 있으며 만약 우리가 치매 발생 연령을 5년 늦출 수 있다면 치매 발생을 절반으로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생에 걸쳐 건강한 생활습관을 지키는 노력으로 치매의 발생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으며 이미 치매가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그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지금 상태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치매를 유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원인질환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입니다. 아직 획기적인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지 못하여 현대판 불치병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제 조금씩 그 치료의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알츠하이머병은 65세 이후에 발병하는 산발형 알츠하이머병입니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직접 유전되는 유전성 질환이 아니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산발형 알츠하이머병에 있어서도 유전적 소인이 많이 관여합니다. 가족 가운데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있으면 그 자손은 가족력이 없는 경우보다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40%정도 높아집니다. 또한 콜레스테롤 대사와 운반에 관여하는 단백질인 아포E 지단백(apolipoprotein E, APOE)의 유전자는 19번 염색체에 존재하는데 모든 사람은 E2, E3, E4 대립 유전자 가운데 두 가지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즉 유전형이 APOE 2/2, APOE 2/3, APOE 2/4, APOE 3/3, APOE 3/4, APOE 4/4 6가지 가운데 하나에 속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APOE 유전자를 가졌느냐에 따라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유전적 위험요소 가운데 ‘나이듬(aging)’ 즉, 노화 이외에 가장 강력한 것이 APOE 유전자 형입니다. APOE 4유전자를 하나 가진 경우에는 4~6배, 두 개를 가진 경우에는 10~12배 정도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찌해볼 수 없는 유전적 위험과는 달리 환경적 위험인자는 우리의 노력 여부에 따라 그 위험도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음용수에 녹아있는 금속이온이나 독성물질, 음식물에 함유된 농약성분에서 시작하여 우리가 매일 들이마시는 오염된 공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우리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물질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본 칼럼에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암’보다 더 두려운 존재인 치매의 발병에 환경 오염이 얼마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지 특히 날로 정도가 심해져 가는 초미세먼지의 위험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해보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천고마비’라는 단어가 생경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주는 상큼한 바람과 눈이 부시도록 파란 가을 하늘을 느껴본 지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엔 봄철마다 찾아오는 황사(黃砂)와 매우(梅雨) 때문에 잠시 불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뽀얀 흙먼지를 날리며 시골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기억도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의하면 2018년 6월까지 우리나라에 등록된 자동차 숫자는 2,280만대로 인구 2.3명당 1대를 보유한 셈입니다. 불과 한 세대 전에 누리던 맑은 공기는 오늘날 우리가 편리함에 따르는 대가, 즉 내연기관에 의한 배기가스 공해와 맞바꾼 셈입니다. 마음껏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없게 된 오늘이 어제에 비해 과연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자신에게 반문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동안 우리 귀에 생소하게 느껴지던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와 같은 단어들이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먼지’란 대기 중에 떠다니거나 흩날려 내려오는 입자상 물질을 말합니다. 자연적인 것으로는 흙먼지, 식물의 꽃가루, 바닷물에서 생기는 소금, 산불과 화산재 등이 있으며 인위적인 것으로는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를 태우거나 자동차 배기가스, 타이어 분진,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날림 먼지 등이 있습니다. 먼지는 입자 크기에 따라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로 나눌 수 있는데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름 10마이크로미터(㎛) 이하 먼지는 미세먼지(PM10), 지름 2.5㎛ 이하는 초미세먼지(PM2.5)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미세먼지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 놓은 것은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미세먼지의 위험성이 안 질환이나 호흡기 질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신경계에도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미세먼지와 대기 오염에 가장 취약한 계층은 어린이와 노인들입니다. 6년간 실시된 주요 연구에 따르면, 대기가 오염된 도시에 사는 어린이는 정상인보다 폐활량이 최대 10%까지 작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PM2.5는 3-9세의 소아에서 IQ를 떨어뜨리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와 자폐증의 발생위험을 높이며 좌뇌 백질의 부피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임신중 반복적으로 초미세먼지에 노출된 산모에서 태어난 아이는 발달장애와 더불어 인지능력 개발이 불완전하게 됩니다. 또한 공기 오염이 심한 북부 멕시코시티에 3년 이상 거주한 소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정신운동안정성(psychomotor stability), 협조운동(motor coordination), 반응시간 테스트(resonse time test) 모두에서 저조한 성적을 나타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초미세먼지의 흡입으로 뇌유래신경영양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BDNF)라는 물질이 감소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BDNF는 학습과 기억 그리고 고차원적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해마, 대뇌피질 및 기저전뇌(basal forebrain)의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활성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오염된 공기에 장기간 노출된 성인들도 인지기능 저하가 가속화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인연령층에서 PM2.5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한 모든 치매 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아집니다. 중국, 멕시코 그리고 멕시코에서 대기 오염이 심한 지역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대상연구 결과 상대적으로 대기의 질이 좋은 곳에 거주하는 노인에 비해 대표적인 치매선별검사 도구인 간이정신상태검사(MMSE) 점수가 확연히 낮아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디젤기관 매연 성분인 black carbon과 PM2.5 농도는 MMSE 점수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블랙카본의 농도가 10ug/mm3증가할 때마다 저하되는 인지능력이 2년간의 인지노화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2017년 Lancet에 발표된 캐나다 온타리오주 연구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주거지가 주요 간선도로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가 대기 오염도의 정도와 관련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가는 일입니다. Chen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주거지가 간선도로 50 미터 이내, 50~100 미터, 100~200 미터, 200~300 미터, 300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5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퇴행성 뇌질환의 발병 빈도를 조사하였습니다. 결론은 간선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살수록 치매 발생 위험이 낮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연구팀이 함께 조사하였던 파킨슨병이나 다발성 경화증의 발병 빈도는 크게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대기 오염이 치매를 유발하는 위험 인자라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걱정스러운 사실이 있습니다. 앞에서 알츠하이머병의 유전적 위험인자인 APOE 4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이 유전적 소인을 가진 사람은 대기 오염에 더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같은 농도의 대기 오염에 노출되어도 APOE 4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염증반응이 더 심하게 일어나며 따라서 인지기능 저하도 저 심해지는 것입니다. 나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나쁜 환경에 노출되면 이중으로 인지기능 악화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한 해 700만명이 대기오염으로 사망한다는 세계보건기구의 경고가 이제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닌듯 싶습니다. 연중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미세먼지의 공격이야말로 이제 환경 재앙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젊은 학부형들 사이에는 ‘환경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돌이킬 수만 있다면 어릴 적 무심하게 바라보던 눈이 부시게 파란 가을하늘이 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당장 우리의 삶은 물론 미래를 책임져야할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환경오염이 진행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겠으나 지금 당장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치매의 발생을 예방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글 : 건국대병원 신경과 한설희 교수/건국대병원 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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