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부터 캐나다·멕시코 취재 뒤 '추가 촬영·편집 등을 중단' 명령받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기 전 방송을 내보내 협정이 한국사회에 미칠 영향을 알리고 토론의 장을 열고 싶었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김영호 문화방송 피디가 13일 윗선의 지시로 '한미 FTA' 편을 방송하지 못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 피디는 지난 1월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취재해 2월28일 방송을 내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김상수 시사교양국장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어서 총선 뒤 방송한다"는 '방송 보류' 결정을 내렸다.


김 피디는 "올해 신년기획으로 자영업자의 몰락을 취재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자영업자의 위기가 가속화하는 등 한국사회 전반이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며 "우리보다 먼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멕시코와 캐나다 사례를 구체적으로 취재해 그 영향을 제대로 보여줄 계획이었다"라고 말했다.


김 피디는 1986년 문화방송에 입사한 부장급 피디다. 노동조합원이 아니어서 파업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김 피디는"김철진 책임피디(시사교양 2부장)와 김상수 시사교양국장 결재를 거쳐 정상적 절차에 따라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멕시코와 캐나다 출장을 다녀왔다"며 "파업에 참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취재를 하고 방송을 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피디는 18박19일간의 멕시코·캐나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지난달 20일 "'추가 촬영·편집 등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김 피디는 "취재를 마치고 제작 중단 명령을 받은 것은 노태우 정권 때도 없었던 일"이라며 "20여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작 중단 압력은 취재 단계에서부터 있었다. 김 피디는"멕시코에서 취재하고 있던 지난달 10일부터 김철진 부장이 전화를 걸어와 '너무 민감한 정치적 이슈가 됐다. 취재를 중단하면 안되겠냐'며 1시간가량 설득하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이 전화를 걸어온 것은 지난 8일 야당이 미국 대사관을 방문해 오바마 미 대통령과 조 바이든 상원의장, 존 베이너 하원의장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 정지와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직후다.


김상수 시사교양국장은 13일 문화방송 인트라넷에 "방송을 총선 이후로 미루자는 결정은 제가 했다"며 방송 보류 결정을 내린 이유를 밝혔다. 김 국장은 "김 피디가 캐나다와 멕시코 출장을 간 사이 국내에서 한미 FTA가 총선을 앞두고 최대 이슈가 됐다"며 "시사·보도 프로그램이 총선 국면에서 여야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송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또한 "을 한 달 넘게 방송하지 않다가, 한 주 내고, 그 다음에 또 계속 불방하는 건 상식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 피디는"단순히 찬성한다, 반대한다는 정쟁의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커다란 변화의 계기를 우리는 제대로 준비해서 맞고 있는지 점검하는 의미를 담았다"며 "부장, 국장 등은 어떤 내용을 취재했는지 자세한 내용도 모르는 채 단지 '한미 FTA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방송을 총선 이후로 미루는 정치적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기준'은 보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균형있게 보도하라는 것"이라며 "모든 정치적 쟁점을 선거 관련 사항이라서 보도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방송은 무엇을 보도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당대의 쟁점과 국민이 알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공정하고 진실하게 알려주는 것이 방송의 역할인데 문화방송은 지금 그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을 보류하거나 검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재철 사장이 취임한 지난 2010년 8월에는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이 방송 보류됐다. 지난해 1월에는 '공정 사회와 낙하산' 편을 두고 사전 심의 논란이 빚어졌고, 지난해 3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무릎기도 사건'을 다루려던 제작진이 윤길용 당시 시사교양국장으로부터 취재 제재를 받았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누구를 위한 한강변 개발인가' 편에서 오세훈 시장 언급 부분이 모두 빠지는 등 방송 직전 긴급 수정됐다.

<기사출처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