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도전적 목표의 설정과 이에 집중하는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사상 최고의 성과를 기록했다. 올림픽 출전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500M 남녀동반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고, 두 명씩이나 복수 메달을 획득했다.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약체로 평가되던 한국의 스피드스케이팅팀이 이뤄낸 이러한 성과는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는 한국기업에도 교훈을 제공한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善戰의 5大요인은 크게 S.P.E.E.D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는 Sponsorship(후원), 즉 장기적 시각의 투자와 지원이다. 장기적인 계획하에 비인기 종목인 빙상에 꾸준히 투자를 지속한 것이 금번 선전의 초석이 되었다. 두 번째는 Passion(열정)이다.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은 모두 1988년, 1989년生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에 대한 열망도 숨기지 않으며,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해왔다. 세 번째는 Emulation(경쟁과 모방)이다.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 선전의 틈바구니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받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오기와 경쟁심, 그리고 쇼트트랙 등에서 도입한 기술을 바탕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네 번째는 Environment(환경)이다. 점차 확대되고 있는 빙상 관련 인프라와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는 교육 훈련기관 역시 중요한 기여를 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Direction(지도)이다. 특히 금번 올림픽에서 다수의 선수들이 동시에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데는 지도자의 역할이 큰 기여를 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자신은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지만 오랜 국제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자처한 선배들 역시 어린 선수들이 꾸준히 정진할 수 있는 나침반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와 같은 스피드스케이팅의 성공요인은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기업경영자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우선 도전적 목표의 설정과 이에 집중하는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의 성공담은 경영자들에게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두 번째는 장기적 비전과 인내심에 기반한 꾸준한 투자의 중요성이다.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일정기간 동안 투자가 축적되면 특정시점에서 그간의 투자가 성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양질전환(量質轉換)의 원리’를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관련 종목, 인프라 및 경험 많은 지도자와 선배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룬 금번 스피드스케이팅의 성공은 기업의 성공을 위해서도 해당기업이 소속된 기업 생태계 전체의 발전이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1. 밴쿠버에서의 연이은 승전보

최고 성적을 기록 중인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2010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에서 한국의 남녀선수가 동반우승. 남자는 모태범(500M), 이승훈(1만M) 선수가, 여자는 이상화(500M)선수가 금메달을 획득.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상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 2월 25일 현재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해 동계올림픽 출전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 중. 이전까지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국내 선수가 획득한 메달수는 단 2개에 불과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이 이뤄낸 의외의 선전에 대해 국내외 언론은 ‘신선한 충격’이라는 반응. 단일 올림픽에서 한 국가의 남녀 500M 동반우승은 사상초유의 쾌거. 육상 100M에 비견되는 500M 경기는 체격조건이 유리한 서구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지속해 온 종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배가. 대부분 주요 외신들은 예상치 못했던 한국선수의 선전을 ‘Surprise’,‘Shock’, ‘Upset’으로 표현. “이변의 주인공”(AP), “충격적 승리”(AFP), “뜻밖의 금메달”(ESPN)

여론은 물론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이변’을 만들어낸 대표팀의 성공요인을 분석해 기업에 줄 수 있는 시사점을 도출. 스포츠와 기업경영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펼쳐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에는 공통점이 존재. “끊임없는 격렬한 승부에 자신을 노출시켜 단련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스포츠와 비즈니스는 매우 유사”(미식축구 선수 출신의최고경영자, 커트 올슨 ING생명 CEO).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성공은 다양한 이유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중소·중견 기업에도 도전의 교훈을 제시

2. 스피드스케이팅 쾌거의 5大요인: S.P.E.E.D

스피드스케이팅의 눈부신 성과는 장기적인 투자와 지원, 선수의 패기와 열정, 他빙상 종목의 선전에 따른 시너지, 저변 및 인프라의 확대, 지도자와 선배의 방향 제시의 5大요인이 결합되어 빚어낸 결실

① Sponsorship: 후원기업의 투자와 지원은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동시에 선수들의 목표의식을 자극
② Passion: 신세대 선수의 패기와 열정은 글로벌 무대에서도 대담하게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
③ Emulation: 쇼트트랙 등 他빙상 종목의 축적된 성공 경험으로부터 자신감 향상, 기술 전수 등 파급 효과가 발생
④ Environment: 빙상 스포츠가 대중화되고 체계적 정규교육이 뒷받침되는 등 빙상 종목의 저변 및 인프라가 꾸준히 확대
⑤ Direction: 경험 많은 지도자와 선배의 헌신이 어린 선수의 기량 및 경기 대응력 향상에 중요한 역할

① Sponsorship : 장기적 시각의 투자와 지원

다양한 형태의 기업후원을 통해 선수들이 기량 향상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 삼성화재는 빙상스포츠가 비인기종목이던 1997년부터 매년 대한빙상경기연맹을 지원하여 각종 상금과 장학금을 내건 청소년 대회를 신설하고, 선수의 해외 전지훈련 및 일류 코치 영입을 위해 노력. 매년 8~10억원을 지원하여 2010년 2월까지 총 120억원을 후원. 기아자동차는 총 18명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를 후원하는 것 외에도 스키점프와 봅슬레이팀에 훈련용 그랜드카니발을 1대씩 지원. 신생 워킹슈즈업체 린(RYN)의 경우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와 4년간 40억원 규모의 의류부문 독점후원 계약을 체결

빙상연맹은 메달 종목 다변화를 목표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직후부터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 발전계획을 주요 내용으로하는 ‘2010 밴쿠버 프로젝트’를 추진. 빙상연맹의 지원을 발판으로 선수단은 원하는 만큼의 전지훈련을 소화하면서 밴쿠버 현지적응에 만전을 기할 수 있었음

② Passion : 신세대 선수의 패기와 열정

개성이 강하고 자기표현이 명확한 신세대 선수는 글로벌 무대의 긴장감과 압박에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즐길 줄 아는 의연함과 대담함을 보유.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잘 추스르고 의연하게 맞서는 뚝심을 발휘. 남자 500M 결승을 앞두고 정빙기 고장으로 인해 경기가 약 1시간30분 지연되어 선수의 경기리듬이 깨질 만한 상황에서도 모태범은 침착하게 자기 페이스를 유지해 평소 이상의 성적을 기록

자기 종목에 대한 애정과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선수들의 열정이 초인적인 훈련을 소화하는 원동력으로 작용.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집념을 가지고 매일 추운 연습장에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지독한 훈련을 치뤄내며 잦은 부상도 견뎌냄. “나쁜 천사는 더 자라고 소리치고 착한 천사는 빨리 일어나서 운동가라고 한다. 매일마다 천사들이 싸우니 지긋지긋하다. 싸우지 않게 벌떡 일어나야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상화 일기 중). 모태범은 평소 동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동계올림픽 직전 대표팀 삼겹살 회식에서 직접 싸온 닭가슴살을 먹을 만큼 경기와 성적에 집중

③ Emulation : 他빙상 종목 善戰에 따른 시너지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등 유관 분야의 축적된 성공경험으로부터 자신감 충전, 기술 이전 및 전략 벤치마킹 등 레버리지 효과가 발생. 모태범, 이상화 모두 쇼트트랙 선수 출신으로 이전 쇼트트랙에서 쌓은 강훈이 지구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분석

특히 스피드스케이팅의 승부가 코너링에서 결정된다는 점에 착안, 2000년부터 코너링이 많은 쇼트트랙 기술을 접목했고 대표팀은 일주일에 세 번씩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훈련. “쇼트트랙은 반지름이 8M, 스피드스케이팅은 23M다. 짧은 트랙을 오래 돌면 다리 근력에 엄청난 부하가 생겨 지구력이 증가할 뿐만아니라 코너링도 훨씬 섬세해진다.”(제갈성렬, SBS 해설위원)

과학적인 최적곡선율 계산에 근거하여 탄생한 쇼트트랙 스케이트 날을 참조하여 스피드 스케이트 날도 변형. 일반적으로 스피드 스케이트 날은 ‘一자형’이지만 모태범은 빠른 코너링을 위해 쇼트트랙 스케이트 날처럼 약간 휘도록 제작

동시에 他종목의 선전과 스포트라이트 집중 현상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종목의 선수들에게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동인으로 작용

④ Environment : 저변 및 인프라 확대

1980년대 후반부터 활발해진 실내 빙상장 건립으로 스케이팅이 대중화되고 초등학교에서 대표팀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전문적 훈련이 이루어지는 등 빙상종목의 저변 및 인프라가 꾸준히 성장. 1989년 목동 빙상장, 1995년 과천 빙상장, 2000년 국제 규격을 갖춘 태릉 국제빙상장 등 총 26개의 실내외 빙상장이 개장하여 어린 예비선수들이 스케이트를 친근하게 접하고 꿈을 키우는 場의 역할. 특히 김연아의 활약으로 빙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2009년 빙상장 입장객 수가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

모태범, 이상화를 배출한 은석초교의 빙상 선수반과 이승훈, 이규혁을 배출한 리라초교의 전교생 빙상 특기 적성교육은 이번 금메달의 씨앗이 되었다는 평가. 유망주 대부분이 모이는 한국체육대학의 빙상부 체력단련실의 경우실전 대비용 빙상훈련장, 1,000만원을 호가하는 근·지구력 보강 기구를 10대나 보유하는 등 태릉선수촌을 능가하는 시설을 구비

공기 저항을 극소화하는 데 목표를 두고 대표팀 유니폼 연구 및 제작에만 무려 2년이 소요. 유니폼 겉면을 폴리우레탄으로 코팅처리한 결과 기존 유니폼 대비 평균 0.036초 단축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

⑤ Direction : 지도자, 선배의 방향 제시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선수에게 혼신을 다하는 지도자와 후배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처럼 여기는 선배의 존재는 외국팀이 갖기 어려운 귀한 자산. 대표팀을 맡은 김관규 감독은 기존의 스파르타식 훈련과 엄격한 규율위주의 대표팀 분위기를 과감하게 벗어내고 선수의 기를 살려줌으로써 제 기량을 한껏 발휘하도록 촉진. “나는 강한 코치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스케이트 선수에게는 편안한 코치가 좋다.”(김관규 감독, AP Sports 인터뷰). 중학교 때부터 줄곧 대표팀에서 생활한 이규혁, 이강석은 후배들에게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를 모두 전수해주며 후배들의 존경을 받음. “태범이가 딴 금메달과 은메달은 내가 목표했던 성적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도 나의 목표였다.”(이규혁 인터뷰). 장권옥, 전재수(미국팀), 김선태(일본팀), 조항민(프랑스팀) 등 금번올림픽에서 다수 한국인 코치가 맹활약하며 한국 코치의 인기를 실감

3. 기업경영에 주는 시사점

도전적 목표(Stretch Goal)와 기업가 정신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최초의 금메달 획득은 최근에 그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는 한국의 기업가 정신에도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 꿈과 도전적 목표를 기반으로 한 응집된 노력이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의 성취를 가능케 함을 다시 한 번 입증. 한국이 반도체 및 조선 산업에 뛰어들 당시의 도전정신, 이미 1990년대에 세계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기 시작했던 한국기업의 진취적 자세를 상기시켜주는 성공 스토리.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고, 더 높은 곳에 시선을 맞추는 것이 남다른 성과달성의 중요한 원동력. GE는 워크아웃의 주요 기준 중 가장 첫 번째로 도전적 목표를 제시해 성과를 달성

장기적 시각의 투자가 양질전환(量質轉換)을 촉발

장기적 비전에 기반한 꾸준한 투자는 특정 임계치를 지나야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짐을 명심. 당장의 성과에 조급해하지 않는, 14년에 걸친 지원이 스피드스케이팅의 남녀 동반우승, 총 5개의 메달 획득에 기여했음을 주목. 삼성화재는 “비인기 종목을 키우는 것은 마치 기업이 중장기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는 시각으로 빙상에 장기간 투자. 기업도 미래 가능성에 대한 투자에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 기업은 당장의 효율성 추구(exploitation)와 미래를 위한 투자(exploration)의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해야 하지만 대부분 단기적시각의 효율성 추구에 집착

기업 생태계의 同時的발전을 모색

스포츠와 산업 부문 공히 특정분야의 성장은 대부분 관련분야와 공진화(Co-evolution)하는 경향이 있음을 주목. 오랜기간 국제무대를 석권해온 쇼트트랙, 최근 피겨스케이팅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는 김연아 선수가 기술적, 정신적 측면에서 스피드스케이팅의 성과 향상에 영향. 세계 수준의 기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도 연관산업, 각종 인프라와 과학기술 및 정부정책 등 기업 생태계 자체의 발전을 모색할 필요. 기업, 연구기관, 금융기관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경쟁우위를 생성하는 실리콘 밸리와 같은 클러스터(Cluster) 조성이 주요 例

산업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나타나는 이종산업 간 교배를 활용하는 퓨전, 융합의 사고를 적극 도입할 필요. 스피드스케이팅의 쇼트트랙 코너링 기술 도입과 같이 관련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술발전 및 혁신을 모니터링하고 도입 기회를 모색. 기업 다각화에서도 특정분야의 핵심자산과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인접영역’으로의 확장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 [강한수 수석연구원/이민훈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