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라면 누구나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을 만나길 원한다. 한 작품으로 거둔 큰 성공은 약이자 독이다. 새 옷을 입고 팬들 앞에 서고 싶은데, 배우를 찾는 제작자는 비슷한 인물을 내놓기 때문이다. 같은 캐릭터의 압박 때문에 무리한 변화를 시도하며 몇 년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임창정(40)은 변화에 무감각하다. '위대한 유산' '색즉시공' '11번가의 기적' '청담보살' 등 굵직한 작품들은 대부분 코믹하고 '찌질'했다. 소시민의 삶을 살다 관객들의 눈물을 훔치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

영화 '창수'(감독 이덕희)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삐뚤어진 삶, 찌질함, 허세, 소시민의 삶이 여전히 닮아있다. 극이 흘러가면서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웃음기'는 자연스레 가신다. 하지만 데뷔 23년 만에 도전하는 첫 누아르 장르라고 해서 맞지 않은 옷을 입었다는 거부감은 없다. 오히려 '창수' 그 자체의 삶을 살고자 했다.

슬플 창(愴) 목숨 수(壽), 영화 '창수'는 슬픈 목숨을 사는 '창수'(임창정)의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징역을 대신 살고 미래와 동떨어진 삶을 산다. 일감을 주는 심부름업체 사장에게 6개월짜리 단발성 징역을 요구하는 그다. 그런 창수가 길에서 세단을 탄 남자에게 뺨과 복부를 맞는 여자 '미연'(손은서)을 만나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오갈 데 없는 미연과 한집에 살면서 '살고 싶다'며 처음으로 미래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미연이 돌연 살해되면서 창수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진다.

 

극 초반 인천 건달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앞머리를 휙휙 넘기는 모습이나 특이한 걸음걸이로 캐릭터를 살렸다. 공중화장실 마지막 칸에 들어간 사람을 향해 '여기는 내 자리'라고 내쫓는 모습도 찌질하다. 절친한 동료이자 창수가 유일하게 아끼는 동생 '상태'(정성화)와 주고받는 애드리브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볍던 창수의 어깨는 무거워진다. 더불어 임창정의 모습도 비장해진다. 조직 보스의 여자이자 조직의 2인자 '도석'(안내상)의 내연녀 '미연'과의 관계로 고문을 당한다. 손에 못이 박히고 다리가 찢기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임창정의 표정에서 그 고통을 가늠케 한다. 담배 한 모금, 술 한 잔을 기울이는 그의 모습에서 인생의 쓴맛도 함께 느낄 수 있다.

누아르 영화라고 해서 화려한 액션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투박하고 거친 몸싸움만 보인다. 그래서 현실적이다.

 

배우들의 연기에 비해 스토리 전개는 아쉽다. 날건달로 살며 다방을 전전하던 창수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여자에게 눈뜬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절박함이라지만 미연이 창수에게 빠져드는 것도 갑작스럽다. 조직 2인자인 도석과 미연의 관계설명도 불친절하다. 사랑에 목숨을 거는 창수의 행동이 관객에게 거부감 없이 전달되기에는 무리다. 사건 진행도 개연성이 없다. 교도소에서 주고받는 창수와 상태의 대화가 명연기로는 꼽히지만, 명장면이 될 수 없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래도 임창정의 진가를 확인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아깝지 않은 영화다. 청소년관람불가, 28일 개봉, 상영시간 1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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