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안컵에서 발굴한 새 얼굴과 실험 성과

▲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이재성이 헤딩슛을 시도하고 있다
[전국뉴스] “‘Save the best for last(마지막을 위해 아껴놓다)’는 영어 속담이 있다. 우승을 하면 선수와 지도자 모두 동기부여가 되고 자신감도 생긴다.”

201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남자부에서 7년 만에 우승한 뒤 금의환향한 한국 축구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이렇게 개선사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지도자 생활 26년 만에 처음 맛보는 우승의 기쁨을 경구로 풀어냈다.
 
그는 이번 대회 우승은 2주 동안 준비한 결과가 아니다. 지난 10월 부임한 이후 꾸준히 노력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1월 아시안컵 준우승을 통해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번 우승으로 이것을 재차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여자월드컵이라는 큰 대회를 치른 경험을 통해 좋은 경기를 했다. 어린 선수들이 이번 대회 경험을 통해 더 발전할 계기가 됐다.”
동아시안컵 여자부에서 준우승을 거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 감독은 줄부상 속에 목표했던 10년 만의 우승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자신감 확인과 어린 선수들의 발굴을 큰 수확이라고 봤다.
중국에서도 찜통더위로 유명한 우한에서 8월을 뜨겁게 시작한 한국 남녀축구 대표팀은 각각 우승,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유럽파나 중동파의 합류가 안 되는 단일권역별 친선대회였기에 선수 구성도 국내파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 대회의 키워드는 실험과 발굴이었다. 남자는 2018 러시아 월드컵을 겨냥한 세대교체의 틀을 갖추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여자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첫 본선 진출을 목표로 신구의 조화를 점검하는데 비중이 두어졌다.
가능성만 타진하는 테스트가 아니었다. 해외파를 받치는 단순한 백업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을 찾는 무대였다. 기회는 공평했고 경쟁은 치열했다. 그 결과 의외로 많은 신예들이 발굴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23명 엔트리 중 중국파 3, 일본파 5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K리거로 뽑았다. 의도적으로 베테랑을 배제한 채 A매치 경험이 일천한 평균 나이 24세의 젊은 피로 세대교체 실험에 나섰다.
 
슈틸리케호에서는 A매치 데뷔전에서 나란히 데뷔골을 터뜨린 라인 브레이커김승대와 광양 루니이종호, 그리고 날카로운 왼발 패스워크가 특기인 2의 고종수권창훈 등이 부각됐다.
 
뉴 페이스 중에서는 스마일 엔진이재성이 단연 돋보였다. 중국전에서 2골에 관여하더니 일본전에서는 조커로 공격 분위기를 확 바꿔놓았고 북한전에서는 종횡무진 파상공세를 이끌어 뉴 에이스로서 존재감을 높였다.
 
지난 3월 슈틸리케 감독이 발굴한 24세 신예로 박지성과 이청용을 합쳐놓은 것 같다는 찬사를 받았다. 왜소해 보이는 체격에도 박지성을 연상케 하는 폭넓은 활동량과 이청용을 닯은 세련된 볼 콘트롤, 창의적인 패스는 우승을 이끈 활력소였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본격적인 주전경쟁을 시작하는 이청용의 백업이 아니라 대안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동안 2의 박지성’ ‘2의 이청용으로 불리는 유망주들은 많았지만 한 대회를 통해 그 경쟁력을 인정받은 사례는 드물다. 좀처럼 볼을 뺏기지 않으며 전진해 나가며 기어코 공격 활로를 열어내고야 마는 집중력은 유럽파 태극전사에 못지 않았다.  
 
이재성은 선수로서 둘을 닮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대표팀에서도 K리그 선수들이 해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이재성이 K리그에서도 꾸준히 주전으로 활약해 경기감각을 유지한다면 다음 달부터 재개되는 월드컵 예선무대부터도 에이스 손흥민의 반대편에서 오른쪽 날개로 공격 파괴력을 높여줄 활약을 기대케 한다.
FIFA 여자랭킹 17위로 두 달 전 캐나다 여자월드컵에서 첫 16강 위업을 달성한 윤덕여호는 북한(8)과 최종전에서 패했지만 캐나다 월드컵 8, 준우승팀인 중국(14), 일본(4)을 연달아 제압했다. 엔트리 23명중 월드컵에 출전했던 멤버가 17명이었지만 지소연, 박은선, 유영아 등 대표 공격수들이 빠지고 부상자가 속출한 가운데 새로운 자원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권하늘이 한국 여자축구 사상 최초의 센추리클럽(A매치 100회 출전)에 가입한 가운데 이민아, 이금민, 이소담, 장슬기, 서현숙 등 1991~1994년생의 어린 선수들이 제몫을 해내 신구조화가 빛났다. 내년 2월 사상 처음 본선진출을 노리는 올림픽 예선에 대비한 스쿼드의 폭을 넓히는 효과를 얻었다.
특히 지소연이 뛰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맡은 이민아는 뛰어난 발재간과 창조적인 경기운영 능력을 보여줘 일약 새로운 스타로 주목받았다. 실력에다 깜찍한 외모까지 부각돼 새로운 팬들도 확보했고 여자 박지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애칭이 부담스럽다고 손사래치자 여자 이재성이란 별명이 다시 붙었으니. 캐나다 여자월드컵에서 결정적인 순간 택배 크로스로 16강 진출을 이끈 강유미의 발굴에 이은 윤덕여호의 새로운 히트상품이다.
그동안 한국 남자대표팀은 유럽파 1, 국내파 2진으로 양분되는 구도가 고착화돼 왔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참패를 하고나서야 그 불편한 진실은 드러났고 대대적인 대표팀 체질개편 전권이 슈틸리케 감독 손에 쥐어졌다.
 
부임 이후 보는 것만 믿고, 실험한 것만 실행하는 실용주의 축구를 내세워 이름값에 기댄 편견과 활동무대로 구분짓는 차별을 없앤 슈틸리케의 흔들리지 않는 선발원칙은 성과를 낳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을 발표할 때마다 2의 이정협은 누구냐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세대교체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1년 사이에 A매치 데뷔골을 넣은 선수만 6명이나 되고, 이중 데뷔전에서 마수걸이 골을 신고한 선수만도 4명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대회에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9명을 포함시켜 재검증하는 등 피드백도 치밀하다.
세대교체는 일종의 적금붓기라 할 수 있다. 고정금리냐, 변동금리냐를 선택할 때 그동안 한국축구는 해외파가 안정적으로 벌어줄 것으로 기대하는 고정금리를 택한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리스크는 있어도 현장을 찾아다니며 발굴한 저평가된 국내파들에게 과감히 투자한다면 변동금리를 통해 적금 탈 때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치밀한 세대교체로 유명한 독일축구 지도자 출신답게 슈틸리케 감독은 포트폴리오를 통해 세대교체의 퍼즐을 한조각 한조각 맞춰나가고 있다. 한국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마지막 지도자 인생을 걸고 있는 그와 공감하는 한국 여자축구도 의욕적으로 세대교체의 분산투자에 나선 동아시안컵이었다.
 
지도자 인생 26년 만에 이룬 첫 우승에 밝게 웃으며 선수들과 작은 성공에 자신감을 공유한 슈틸리케 감독이다. 메이저 무대에서 가장 밝게 웃는 마지막을 위해 아껴두고 쌓아가는 그의 러시아 월드컵 투자는 다시 재개된다. 경쟁을 통해 도약 기회를 얻고 누구나 실력으로 평가받는 합리적인 세대교체의 믿음을 확인하게 된 젊은 피들과의 동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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